하나님이 하시는 일

by 강석진 posted Aug 03, 202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하나님이 하시는 일
요한복음 9장 1~7절
2025년 7월 27일
설교자: 김상득 목사


상징주의 미술의 거장인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는 
"세계에는 세 개의 사과가 있다.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세잔의 사과다."고 했습니다.
여기에다 오늘날 에는 제4의 사과로 스티븐 잡스의 애플 로고를 언급합니다. 
우리에게는 애플의 사과처럼 혁신적 사유가 필요합니다. 특히 사업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그리고 뉴턴의 사과처럼 과학적 사유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정말 필요한 사유는 아담의 선악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의미를 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 내용은 이러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걷다가,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누구의 죄 때문에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났는지에 대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질병이나 장애는 죄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을 받고 예수님은 부모의 죄 때문도, 자신의 죄 때문도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가까이 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른 다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자 맹인은 예수님의 이 명령에 따라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성경의 기록입니다. 
하지만 이 맹인 치유 기적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해 줍니다. 
우선 믿음의 사람은 원인이 아니라 의미를 묻는 자임을 오늘 본문은 말해 줍니다. 

제자들은 원인을 물었습니다.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사람들은 모든 일에 대해 원인을 알고 싶어 합니다. 
필립 켈러는 말합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원인을 알고 싶어 하는 존재다.” 
이유는 뭘까요? 문제 해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난하거나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의 질문도 문제 해결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의 책임인지 폭로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인을 묻지 않고,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

우리가 쓰는 “왜”라는 질문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원인(cause)을 묻는 왜. 둘째, 이유(reason)를 묻는 왜. 셋째, 의미(meaning)와 목적(purpose)을 묻는 왜입니다. 
제자들은 첫 번째를 물었지만, 예수님은 세 번째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원인이 아니라 의미를 묻습니다. 
과학자들은 모든 사건에 원인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건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성경을 묵상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도 '맹인'이 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원하지 않는 실패나 고통, 즉 한 마디로 말해 불운을 뜻합니다. 
이 세상에 맹인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실패를 원하지 않는데 실패가 찾아옵니다. 
질병을 원하지 않는데 질병이 찾아옵니다. 사업이 번창하기를 원하는데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예수를 잘 믿어도 불운은 옵니다. 삶의 지혜는 불운을 불행으로 만들지 않고, 행복의 원천으로 바꾸는 데 있습니다. 
로또에 당첨돼도 행복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행운을 잘 관리해야 행복합니다. 마찬가지로, 불운도 잘 관리하면 은혜가 됩니다.

이때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누구 때문이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가?” 
구약의 한나를 보십시오. 아이 없음이라는 불운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삼상 1:10).
닉 부이치치도 그렇습니다. 팔과 다리 없이 태어난 그는 절망 끝에 자살을 시도했지만, 
15살 때 요한복음 9:3 말씀을 읽고 고백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드러내기 위해 태어났다.” 

불운이 찾아올 때 우리 모두 물음을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이 불운을 통해 하나님 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사항이 있습니다. 이렇게 물음이 바뀐다고 해서 내 인생이 곧장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 두 번째 이야기, 즉 예수님과 맹인의 대화 및 맹인의 행동에 주목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소경에게 눈이 밝아질 것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을 뿐입니다. 
거리는 약 5km, 소경이 가기에는 힘든 길이었습니다. 눈에 진흙을 바른 채 걷는 것은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갔습니다. 왜?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결과가 보장되지 않아도, 불편하고 힘들어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닉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려 애썼습니다. “제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일어설 수 없습니다.” 
맹인이 실로암 못으로 갔듯, 닉이 일어서려 애썼듯, 우리도 죽을 힘을 다해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오늘의 주인공은 눈을 뜨는 행운, 즉 은혜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들의 현실은 닉 부이치지를 닮았습니다. 
하나님은 닉에게 팔과 다리를 선물해주지 않고, 장애의 몸 그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현실에 가깝습니다. 
바울을 보세요. 그는 몸의 가시를 두고 세 번이나 금식 하면 없이해 달라고 간구하였지만 
하나님은 가시를 없애주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후 12:9) 

하나님은 본문의 맹인처럼 장애 극복을 통해서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닉처럼, 바울처럼 불운을 그대로 두고서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도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이제는 질문을 바꾸십시오. 실패와 역경 앞에서, “누구 때문이냐?” 묻지 말고,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물으십시오. 
깨달았다면 닉처럼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오. 맹인처럼 실로암 못으로 가십시오. 
세상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군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Articles

1 2 3 4 5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