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산상수훈(15) 전통 신앙과 정통 신앙

마태복음 527-32

20251123

결단: 주께 가오니

 


언제부터인가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준이 중요합니다. 잘못된 기준으로 열심이면 그만큼 잘못은 더 심각해집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려는 열심에서 부족한 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작고 사소한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정결의식을 만들었고, 심지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39가지의 금지 조항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자 그들이 분노한 것도 전통을 지키려는 열심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열심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게 된 그들의 기준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율법의 근본정신, 즉 사랑은 없고 오직 겉으로 드러나는 열심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것을 외식이라고 규정하시고 "화 있을진저"라고 책망하시면서 그들의 위선을 고발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치명적인 문제는 율법의 근본정신을 놓치고, 자신들이 만든 전통을 얼마나 준수했느냐에 따라 거룩함을 판단하려는 외식적인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의 기준은, 말씀이 아니라 그 말씀에 대한 자신들의 종교적 견해였습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전통"이라고 부릅니다.

"전통", 율법 자체가 아니라 율법을 '보완'하려는 구전 율법(Oral Torah)을 가리킵니다. 이런 전통은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실제 생활 속에서 더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잘 지키기 위한 좋은 의도로 만들어졌습니다. 문제는, 이 전통이 시간이 흐르면서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말씀보다 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점을 비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7:8)

 

오늘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간음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간음에 대해 매우 엄격합니다. 간음은 결혼이라는 언약을 파괴하는 일이며, 동시에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에 대한 배반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에서는 사형에 이를 정도의 중대한 죄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문제를 마음의 차원까지 확장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28)

 

이 말씀은 전통적인 신앙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신앙의 기준을 당시에 익숙했던 외적인 행동의 영역에서 내적인 생각과 동기의 영역으로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율법에 익숙했던 이들은, 예수님의 새로운 기준 앞에서 모두가 죄인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외적인 행위로 쌓아 올린 거룩함과 신앙이 하나님 앞에서는 결국 위선이고 가짜에 불과함이 드러난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갈등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전통과 정통의 갈등입니다.

(1) 전통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신앙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때로는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본래 의도와 무관하게 인간의 생각이나 경험이 더 중요한 것으로 자리 잡게 된 관습과 같은 것입니다.

(2) 정통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뜻, 곧 말씀의 중심에서 흘러나온 변함없는 진리를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간음의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전통 신앙과 정통 신앙의 문제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주장한 전통적 신앙에서 보면 육체적 간음만 하지 않으면 율법을 지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간음이라는, 완전히 다른 기준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전통적인 신앙을 수호하려는 바리새인들의 분노와 적개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 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고, 그래서 예수님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신성 모독자로 몰아 세웠습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맞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공격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흠집을 내려고 했습니다.

 

전통과 정통의 갈등은 비단 바리새인과 예수님 사이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시대의 전환기에서, 사회가 불안할 때, 가치관이 흔들릴 때마다 발생하는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이런 갈등은 신앙 공동체가 성장과 성숙을 향해 나아갈 때 반드시 거치는 과정입니다. 앞 세대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전통이 다음 세대들에게 새로운 질문이 된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기 하신 것처럼 본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물어야 합니다. 모르는 사이에 변질되었던 부분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되찾아가는 정통 회복의 움직임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언제나 긍정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갈등이 깊어질 수도 있고, 감정적인 공격으로 흐를 위험도 커집니다. 전통을 중시하는 이들은 기존의 질서를 지키려고만 하고, 정통을 붙드는 이들은 기존의 모든 관습을 다 틀렸다고 비판합니다. 교회 안에서 세대 갈등은 더 첨예해질 수 있으며 그로 인해서 신앙과 관련하여 전통과 정통의 갈등이 빈번해질 수 있습니다.

본질을 회복해야 할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형식과 체면입니다. 형식과 껍질을 벗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맙시다그런 것들이 무너져도 본질을 붙잡는다면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중요합니다. 

 

수단이 늘 목적보다는 수행하기가 쉽고, 더 즐거운 특성을 가지기에 종종 목적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역전이 일어나곤 합니다예를 들면, 교회의 사명이 있으니 교제가 있고 사역이 있는 것인데 어느 순간 교제나 봉사가 더 중요해지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통이라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본질적 질문을 다시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정통, 곧 본래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교회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배 공동체이고, 말씀의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지는 훈련 공동체입니다.

둘째는 '왜 성도들끼리 교제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신약 교회가 음식을 나눌 때 그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자리였고, 서로를 세우며 자신이 받은 은혜를 나눔으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먹는 행위 자체가,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정신이 빠진 채 굳어진 전통에 대해서, 본래의 하나님의 뜻인 정통을 가지고 정통으로 부딪히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우리를 정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1) 오히려 마음의 욕망이 얼마나 무섭게 자 라서 돌이킬 수 없는 인생 파괴를 일으킬지를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깊은 타락의 무서움으로부터 보호하시려는 것입니다.

(2)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도 마음의 간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심으로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미디어 시대에서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요?

첫째, 시선을 지키십시오.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29)

눈을 빼어 버리라는 과격한 표현의 의도는 보는 것에 더욱 신중하라고 것입니다. 내가 어떤 이미지들에 쉽게 반응하는지 패턴을 알고 조심해야 합니다.

 

둘째, 마음을 보호하십시오.

진리의 말씀으로 채우면 유혹이 들어올 자리가 좁아집니다. 영적 독서를 꾸준히 하고, 묵상하는 삶을 유지하면서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음의 보초를 세우십시오.

 

셋째, 가정에 더 충실하십시오.

가정에 마음을 두고, 배우자와의 관계를 정직하게 돌보는 것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보호막이 됩니다. 가정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이런 삶의 태도는 마음을 하나님께 두고 참된 사랑을 귀하게 여기는 노력입니다. 죄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고 내가 사랑해야 할 관계에 더 충실하려는 신앙적 선택입니다. 죄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은 가족을 지키는 것이고, 신앙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은혜 안에 머무십시오. 우리 힘으로는 눈도, 마음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유혹 앞에서 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더 깊이 예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약함을 아실뿐만 아니라 거룩해지길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을 죄의 속박을 끊고 자유케 하십니다. 주님 안에 머무는 것, 우리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능력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나아갑시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주님께 다가갑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9 산상수훈(16) 맹세하지 말라 김준영 2025.12.07 26
148 우리 함께 예수님을 기다려요 file 송수영 2025.11.30 29
» 산상수훈(15) 전통 신앙과 정통 신앙 이상원 2025.11.23 63
146 산상수훈(14) 우리는 더 이상 옛 사람이 아닙니다 강석진 2025.11.16 60
145 산상수훈(13)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제자가 돼라 김준영 2025.11.09 86
144 감사는 신앙입니다 송수영 2025.11.03 107
143 산상수훈(12)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이상원 2025.10.26 232
142 산상수훈(11) 하늘의 상을 바라보는 자2 김준영 2025.10.19 287
141 산상수훈(10) 하늘의 상을 바라보는 자 강석진 2025.10.12 301
140 산상수훈(9) 화평을 만드는 사람 file 송수영 2025.10.06 307
139 산상수훈(8): 마음이 청결한 자 이상원 2025.09.28 290
138 산상수훈(7) 받을 상이 있는 복: 긍휼 강석진 2025.09.21 332
137 산상수훈(6) 완전한 만족을 누리는 복 김준영 2025.09.14 302
136 산상수훈(5) 온유,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 송수영 2025.09.08 331
135 3세대가 하나되는 교회 이상원 2025.08.31 325
134 산상수훈(4) 애통의 끝자락에서 강석진 2025.08.24 368
133 산상수훈(3) 마음이 천국이 되다 김준영 2025.08.17 355
132 산상수훈(2)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다 송수영 2025.08.10 377
131 산상수훈(1) 예수님과 함께 산을 오르다. 이상원 2025.08.03 385
130 하나님이 하시는 일 강석진 2025.08.03 28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