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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7) 받을 상이 있는 복: 긍휼
마태복음 5장 7절, 6장 1-4절
2025년 9월 21일 
결단: 나는 믿네


팔복의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있을 것이다.” 
“위로를 받을 것이다.” 
“기업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상급이 있다는 것은 성경의 일관된 약속이며, 그 최종은 천국과 영생, 면류관입니다. 
성경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상을 사모하면서 고난과 어려움을 견뎌 냈습니다. 
지금의 수고와 충성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강력한 동기를 줍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상을 믿지 못하거나 눈앞의 당장 보상에만 급급하게 살아갑니다.
영원한 보상에 대한 기대가 없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C.S. 루이스는 이런 시대를 향해 “우리의 문제는 욕심이 너무 강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약한 데 있다. 에메랄드빛 바닷가에서 보내는 휴가는 생각도 못한 채, 그저 더러운 도랑에서 진흙탕물을 일으키며 놀고 있는 이들처럼, 하나님께서 주실 무한한 보상의 기쁨 대신에 술과 섹스, 도박과 욕망에 빠져 살아 간다.”고 비유적으로 말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1-2)고 하시며, 
스스로 상을 챙기려는 자들은 하늘의 상을 잃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성공하면 “복 받았다”고 말합니다. 승진, 경제적 여유, 자녀의 성공이 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복은 “아직 받을 것이 있는 자”입니다. 장차 하나님께 받을 상이 남아 있는 사람, 
하늘에 쌓아 둔 상이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자입니다. 
억울하고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갚으실 상이 있다면 그것이 참된 복입니다.

오늘 본문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입니다. 
이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긍휼히 여기는 자

긍휼은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저 사람 참 불쌍하다”라고 느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손을 내밀고 돕는 행동이 포함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여기신 데서 멈추지 않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긍휼입니다. 긍휼은 상대를 품는 것이며, 누구든 어떤 상황에 있든 예외는 없습니다.

누군가를 그리고 무언가를 품으려면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내가 더 커야 합니다.
작은 그릇은 큰 것을 담을 수 없습니다. 마음이 좁으면 상대의 실수와 연약함, 다름을 감쌀 수 없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품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너무 큰 잘못을 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직 그만큼 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긍휼은 마음의 크기를 넓히는 훈련입니다. 믿음이 커지고 사랑이 깊어지고 은혜가 넓어질수록 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큰 마음을 가지셨기에 세상의 모든 죄를 품으셨습니다.

둘째, 더 오래 견뎌야 합니다. 
품는 것은 순간의 행위가 아니라 지속적인 태도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하루만 안지 않습니다. 넘어지고 잘못해도 끝까지 품습니다. 긍휼은 한순간의 동정이 아니라 인내하며 감싸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반복된 실수에도 끝까지 품으셨고, 십자가 위에서도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셋째, 잘못까지 품을 만큼 성숙해야 합니다. 
긍휼은 보통 나보다 부족하고 모자라고, 심지어 잘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런 사람을 얕잡아보고 정죄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조금만 실수해도 쉽게 비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과 고통을 품으셨습니다. 긍휼 대신 정죄가 앞선다면 교회는 유교적 도덕주의로 변질됩니다.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는 힘은 사람을 품는 긍휼에 있습니다. 긍휼이 능력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만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

살다 보면 누구나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복은 긍휼을 베풀었던 자가 누립니다. 

권민경 집사님의 간증은 이를 잘 보여 줍니다. 등록 후 처음 뜰 모임에서 너무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서 당황했던 집사님은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집사님과 친해졌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교회에 나오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 집사님이 계속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 덕분에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전화를 걸던 집사님이 어려움을 겪자 이번엔 권 집사님이 찾아가고 기도하며 돕게 되었습니다. 긍휼이 돌고 도는 영적 품앗이가 일어난 것입니다.

먼저 긍휼을 베푸십시오. 
긍휼은 손해가 아니라, 내가 다시 살아나는 길입니다. 
내가 품었던 그 일, 감싸 준 그 사람이 언젠가 나를 살리는 통로가 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긍휼을 베풀지 않으면서 긍휼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자 어리석음입니다. 긍휼을 받을 때가 왔는데도 받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긍휼을 심으면 반드시 거두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받는 상이며 큰 축복입니다.

우리가 한 교회에 있는 이유는 서로를 긍휼히 여기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결단합시다. 
“주님, 내가 먼저 긍휼히 여기겠습니다. 내 옆의 성도를 비판하기보다 품겠습니다. 실수할 때 넘어뜨리지 않고, 연약할 때 밀어내지 않으며, 부족할 때 외면하지 않고 품겠습니다.” 

오늘 내가 긍휼을 선택하면 상이 있습니다. 누굴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상은 반드시 있습니다. 아직 받을 상이 있는 자는 복이 있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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