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어둠 속에서 찾은 새로운 길
마태복음 1장 18-25절
2025년 12월 21일/대림절 4주
결단: 나는 일어섭니다
우리는 성탄절을 기다리며 대림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기다릴 때, 처음에는 무엇을 기다리는가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떻게 기다리느냐가 더 중요해집니다. 기다릴 때 조심해야 할 것은, 조급함입니다. 처음에는 좋은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생각한 시간보다 더 길어지면 조급해집니다. 이는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선한 결심을 합니다. 기도하면서 기다립니다. 그런데 내가 정해 놓은 때를 넘기면 마음이 급해지고 기다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집니다. 조급하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더 좋은 것을 끝까지 기다리기 위해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4)
소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다림의 시간을 인내하며 견뎌낸 사람이 등장합니다. 요셉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와의 결혼을 기다리며 행복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요셉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요셉의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분노, 배신감이 한꺼번에 밀려왔을 것입니다. 요셉은 얼마든지 율법에 따라 마리아를 고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용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19-20절)
요셉은 인생의 가장 깊은 흑암 중에서 인내했습니다.
흑암에 있을 때 그 흑암으로 인해 인생의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인내입니다. 인내에 대한 사전적 뜻은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괴롭고 답답한 상황이 오면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을 신앙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인내는 단순히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참는 것은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1. 무조건 참는 인내는 영적으로 건강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인내는 감정을 없애는 훈련이 아니라, 그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나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혼자 참고 분노와 억울함과 슬픔을 참고 버티는 것을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흑암 속에서 마음을 열고, 질문하고, 울고, 다시 하나님의 생각으로 채워지길 바라십니다.
2. 무조건 참는 인내는 고집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참고 있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계속 붙들고 있습니다. 인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변화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상태가 됩니다. 흑암은 더 깊은 흑암이 됩니다. 건강한 기다림은, 우리가 기다리던 더 좋은 그 일에 우리 자신을 더 적합한 사람이 되도록 준비시키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기다림의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럴 때 기다림의 축복이 됩니다.
3. 무조건 참는 인내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로운 길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요셉의 인내는 그냥 참고 버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그 흑암의 상태에 자신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더 나은 길은 없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내입니다.
영적 인내는 아무 변화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인내는 하나님 앞에서 다른 길을 찾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도록 마음의 자리를 비워 가는 긴 과정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거절을 경험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심지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안 되는 일을 경험합니다. 그런 일을 겪을 때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만 몰입하면서 새로운 길을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흑암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요셉처럼 다른 생각을 품는 것입니다. 안 되는 것만 바라보며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어 두신 다른 길이 없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주님은 무엇을 보게 하시는가?", "지금 내가 붙잡아야 할 하나님의 생각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입니다.
인내는 가만히 버티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품고 깊이 사고하는 시간입니다. 인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길을 찾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군사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흑암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혹시 요셉처럼 깊은 흑암 중에 있습니까? 더 이상 길이 없다고, 이 일은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요셉에게 천사를 보내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다른 생각을 주십니다. 그 생각은 당장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동안 어둠 속에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삶의 본질을 보게 합니다.
첫째, 어떤 어둠이든지 그 어둠에는 항상 우리가 아직 생각도 못한 새로운 길이 있습니다.
둘째, 지금은 내가 있는 어둠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흑암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사망의 흑암이 가득한 이 땅에 새로운 길,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빛이 비치기 전에 흑암 가운데서 일어나 그 빛을 맞이해야 합니다.
오늘 결단찬송은 “나는 일어섭니다”입니다. 이 찬송의 고백처럼 어둠 속에서 믿음으로 일어서서, 새로운 길을 찾고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소망의 사람, 영적 인내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